본문 바로가기

개인생각

산에서 조난 당할 뻔 했다.

반응형

사고라는건 평소에 전혀 신경쓰지 않던 

자잘한 것들이 모여

사고가 되는 것 같다.

 

며칠전 꽃구경 겸 산을 올라갔었는데.

나는 산이라곤  집 앞 동산 올라가기 경력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잊은 채

신나게 꽃구경하고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생각해보면 상 정상을 올라가는 길 조차 표지판 안내대로 따라가지 않아

암벽 등반하는 것 마냥 몇 번 가파른 길을 올라갔었다. 이때부터 

길치의 전조를 느꼈어야 했는데...)

 

산정상에서 조금 쉰 후 내려가는데

이 길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다른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올라왔던 길이 아닌 다른 코스로 내려가 버렸다.

 

표지판이 어느순간 보이지 않고 

끊어진 길이 보였다.

(길치들은 끊어진 길이 보인다면 다시 되돌아 가기를 추천드립니다. 이유는...)

 

나는 끊어진 길을 보며 왜 끊어졌지? 하고 의아해만 하고

다른 길이 없나? 하면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끊어진 길 근처에 내려가는 듯한 길이 보여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어라. 경사면의 각도가 심상치 않았다.

 

한 발 한 발 지탱해가며 내려가는데

중반부터 느낌이 왔다.

이거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 길이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발로 중심을 잡을 수 없어 

엉덩이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살짝 위기감을 느꼈지만

길이 좀 험하군. 하며 한 번 더 엉덩이 스키로 내려왔다.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엉덩이 스키로 두 번 내려온 그 길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길의 흔적이라곤 1도 없었고

낙엽을 밟는데. 바스락 하는 그 소리가

아무도 밟지 않아 잘 말린 나뭇잎이 가루가 되는 소리였다.

 

심지어  뾰족뾰족한 밤송이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지금 봄인데. 사람들이 주워가지 않은 밤이 아직까지 있다는건...

긍정회로를 돌려보려 노력해도

이 길은 사람들이 아무도 찾지 않은 길이라는 거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산신님이 계신다면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하고 

진심으로 기도를 했고

이제부턴 한 걸음에 신중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기도가 정말 통했던 것일까.

 

열매를 주우러 오신 인근 주민과 마주쳤다.

 

그 분에게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씀 드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여쭤보자.

여긴 길이 없는 곳이라고. 집이 이 근처니 자길 따라오라 하셔서 

조난 당하는걸 피할 수 있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여긴 들어오는 길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온거냐고.

마주쳐서 다행이지. 큰 일 날 뻔 했다고 말씀하셨다.

 

여긴 깊은 곳이라 멧돼지와 곰이 출몰하는 곳이라

함부로 다니면 큰일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근처에 민가가 있어서 망정이었지.

민가마저 없었으면 정말 아찔할 뻔 했다.

(민가가 드문드문 있는 외진 곳이였는데. 그런곳에서 주민과 마주친 것만으로도 

난 정말 행운아였던 게 아닐까)

 

운명이 있는게 이런 게 아닐까.

 

그 주민분이 봄열매 따러 여기까지 오지 않으셨더라면.

오셨더라도 내가 마주치지 못했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119에 신고하거나(이게 그나마 해피엔딩)

멘붕에 빠져 점점 더 알 수 없는 길로 빠졌을 것이다.

 

산에 오르게 된다면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안내판이 시키는 대로 내려가길 바란다.

 

올라갈 때 내려갈 때 

길도 잘 외우길 바라고.

(산 길은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멘붕에 빠지면 

왔던 길로 다시 가는 것도 힘들다)

 

낙엽길을 걷는 것도 조심하고(사람들이 밟지 않은 듯한 낙엽길 느낌이 든다면

그대 역시 나처럼 길을 잃은 것이다)

 

산행복장을 잘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

(나는 가벼운 차림에 가벼운 슬립온을 신고 등산했었는데

발목 삐긋하기 굉장히 좋겠구나 싶어 조심했었다.

멀쩡한 길을 걸을 땐 잘 몰라도. 내가 길을 잃어버리고 

험한 길을 연속으로 걷게 됐다면 

체력소비가 더 많이 됐었을 것이다.)

 

사고라는 건 갑자기 예고없이 찾아오는 거 같지만 

너무 사소해서 이게? 싶은 것들이 

하나씩 모여 

우연한 이벤트 하나가 터지면 

그게 사고가 되기 딱 좋다는 걸 

이번 사건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우연한 사고를 당했지만 

우연으로 사고를 피한 이 기적이

정말 감사하다.

 

반응형